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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효과 뭘 살까요?

며칠전부터 머릿속에 '천상효과 천상효과...' 이러한 소리가 왜 들려 오는지 모르겠지만, 오늘 작정하고 뇌의 그런 파장을 분석해보다 혹시 이번주에 날더러 그런 효과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라는 싸인? 이라는 의미가 하나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래 제 나름대로 그런 것들이라고 묶어 떠올려 보았으니, 그래서 오늘은 그것에 대해 사보려고 합니다.
(1)
어느날 우연히 고국의 고향 사람을 만났다.
그것도 해외에서, 전혀 그간 듣도 보도 못한 어릴적 고향 아이를.
코흘리개 때 보고 잊고 지냈었는데, 그 아이 이름이 
지금의 나만큼 특이했던 지라 나도 모르게 나의 무의식 안에서
'언젠가 만날 아이'라고 하는 염두를 하고 있었을까? 하여튼 그 아일 우연히 부딪혔는데, 
내 머릿속에서 그려보던 모습과 너무 흡사해서
명함을 주고받으며 속으로 너무 놀라웟다.

내 기억 속의 그 아이는, 
그 아이 엄마가 리어커에 배추를 싣고 배추장사를 하였을 때 
자기보다 손아래 동생 둘을 어린 그 아이가 키워내던 아이였다.  
그 어릴 적에 나역시 그런 그 아이를 대단하고 특이하게 여겼었다는 기억이 났다. 
또 나의 어린시절 기억도 함께 재생되었다.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 우리집 역시 가난하였고, 
그래도 그 시절에 좋은 것과 갖고싶은 거 나름 차지하고 살았던 나의 특권은 
모두 내 어머니로부터 나를 위한 끌려옴 내지는 나만을 위한 특혜 같은 거였는데,
비단 우리동네에서도 그 배추장사하는 집 딸은 
그렇게 가난한 아이들 중에서도 더욱 어린애 고생치곤 쎈 일거리를 마다않고 하던 
아이였던 지라, 어른되어 생각해 보니 그 기억이 무척 새로왔다.
그렇게 어렵게 어린시절을 크고 모두 딴데로 가서 어찌어찌 자랐는지
해외에서 서로 교환하는 명함 속에 의젓하며 빠빳한 자기시절을 살고 있는
서로의 모습들을 보았을 때, 
참 말로 다할 수 없는 훈련된 양상이 잡혀와 흐뭇했다.

훈련되었다는 것은 경계함의 초두 안전망 확보를 위한 자기관리가 되었단
뜻일 진데, 자라오면서 그래도 사회 속의 괜찮은 잘난 사람들을
만난 게로구나.... 하는 생각도 섞여 들어 웬지모를 가슴 털털한 
가슴악수가 나왔다. <너, 이름값 했구나> 라고 나도 모르게 첫 악수 속에 나와버린 
뿌듯한 인사가 그 아이의 어린시절 배추와 리어카 그리고 
맨날 고래고래 악을 쓰던 그 아이 엄마의 그 딸보다 더 철부지 같던 그 아이 환경에 
대한 쓰다듦과
이제 그런 환경 포용할 만큼 잘 성장했구나, 라는 이해까지 
따라오는 지라, 여기서 만나려고 그 아이 이름이 그 시골 마을에서
그러한 이름이었나, 하구서 생각들어
어릴적 동네 아이를 타국에서 만나다니 필시 여기엔 
부족한 서로를 부축하고 채우라는 삶의 보너스인 것만 같아
그럴 때 하늘에 닿아지는 듯한 뭔가의 효력으로부터 다가온 타이밍이
아니었나... 하는 것으로부터 일명 <천상효과>라 일컬진달까.
(2)
어린시절 나랑 가장 친한 친구랑 방과 후 이런 비스무리한 걸 하구서
놀았었는데, 스웨덴 시댁에서 그것도 친척들 만나
딱 어릴 때 내가 갖고놀던 그런 이 게임을 하게 되다니....
우선 50년도 더 된 이런 게임 도구가 시댁에 있었다는 게 너무 놀라웠고,
내 어릴 적 갖고놀던 게임이라 스웨덴에 와서
어릴적 추억같은 합쳐짐. 
만일 내가 어릴 적에 이러한 게임 안 해보고 시댁 식구들과 이런 걸
하였더라면 어쩌면 난 이 게임에서 꼴찌를 하고도 남았을 텐데,
희한하게도 어릴 적 내가 갖고놀앗던 게임인 지라
꼴찌이지 않아도 되었다는 그 천상효과였달까... ㅋ

얼마전 마침 이 비스무리한 게임에 대해 써놓앗던 저쪽 나의 블로그에 올려논
걸 여기 합쳐놓고 싶다 : 
(3)
가장 최근에, 스웨덴 왕비 별장 지역의 18세기 오래된 건물에서 추수 시즌을
기념하는 그 지역 축제 때, 한국자수 전시를 함께 선보인 적 있었다.
그런데 나는 정작 바빠서 그곳의 우리 전시를 제외하곤 거기 뭐가 있는지
둘러볼 여력도 없었는데, 
그날 남편이 거기 와서 사진찍어 보내준 이 사진인즉
같은 장소에 있던 데서 오는 뭉쳐짐 효과랄까,
비록 돌아가신 분이었더라도 
평소 내 하는 일이 유명인 섭외 보여줌이 아닌
전통 일 관련하여 해외에서 선보여진다는 그 자체로 국가에 대한 
민간홍보 차원의 주력 힘만들기 요소라고 봐야 하기에,
어찌 보면 쉽게 지칠 수 있는 일임에도 
어쩌다 한번씩 이런 실력자 유명인 작품과 함께 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될 시,
하늘도 우릴 돕는갑다~~ 하구서 스스로 굳건함을 속으로
믿어의심치 않는 스스로 천상효과 부여. ㅋ
(4)
몇 달 되었다 보다. 스웨덴에선 이제서야 민들레 효과에 대해
눈을 뜨고 있다는 TV프로그램을 보았다.
스웨덴에선 그전엔 민들레를 먹지 않았었나 보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민들레에 대해 새롭게 눈뜬... 뭐 그런 거였다.
'한국에선 이미 민들레 반찬도 있는뎅'... 이러면서
새삼 이런 부분에 있어선 뒤처진 스웨덴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엇다.
하긴, 뒤처졌다기 보다는 
마치 닭발 자체도 안 먹고 버리는 선진국의 한 양상처럼
민들레 역시 그러함의 미개발 측면이지 않앗겠나 싶다.
스웨덴에선 그 어떤 트렌드나, 심지어 BTS조차도 트렌드 효과를 내기에
더딘 나라랄까. 이들은 왜 그렇게 쉽게 기분타지 않는 걸까.
아미들도 라틴이나 미국 아미들과 비교해 상당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일단 북유럽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에서 뭔가 조금이라도 
입덕되었다 할 시에 아메리카나 라틴 기타 모든 세계 지역에서
따라한다. 즉 그 존중받는 효과가 크달까.
그만큼 세련되었다는 걸 인정받는 셈이랄까.
하여 좀 작은 시장이라 해도 그 선전효과가 다른 세계에 파급력이 생긴다.
내가 스웨덴서 문화 일을 만들어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대체 이들은 작은 걸 갖고도 상당한 인정효과를 만들어낸다.
바이킹의 위력인가?
암튼 아주 잘잘한 일 갖고도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귀한 일로 되버리는
일이, 이곳 북유럽에 살기에 때때로 경험해지는 소란스럽지 않음이다.
떠들면서 요란하게 지지고볶는 게 아니라 
소리없이 고요히 그리고 묵묵히 작은 것도 아무나 해내지 못함으로
만드는 그런 효과를 스웨덴 자체가 갖고 있는 것 같다.
예컨데, 중립국 아닌데도 중립국 같은 효과를 갖고 있다거나... 하는 효과.
더불어 우리들도 그런 데에 살고 있는 데서 오는 
감사함이 존재한다. 밖에 나가면 무조건 보이는 게 잔듸여서
늘 초록효과를 누리고 사는 것처럼 그런....
(사진 출처 : 구글링)

(5)
한 스웨덴 친구는 우리가 그 친굴 만날 때면 스웨덴어 써야 하고,
그 친군 우릴 만날 때 전혀 영어를 쓰지 않았다.
그 친군 나에 대해 <쟤는 스웨덴 살면서 스웨덴어 안 쓰고 영어로 하려고 해>
라는 생각을 가졌었다. 그래서 나는
<넌 스웨덴인이면서 왜 맨날 내쇼날리즘이지? 스웨덴은 적어도 
인터내쇼날한 국가라고 알고 있고 또 그렇게 홍보하잖아?>
하였더니 그러한 내 말이 맘에 들지 않았나 보았다. 

비지니스든 실속을 위해서든, 
날더러 스웨덴에 사니 스웨덴어에 더
정통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에겐 정이 떨어진다.
부족한 나를 더 발전시키려면 스벤스카보다는 영어에 더 시간투자해도 부족한
일상 시간을 살고 있는데, 자기들 편하자고 내게 스벤스카를 강요하다니,
여기서 "선진국 후광효과로 경제 낚는 구실"도 안 되는 내 사업상
다른 유럽이나 기타 세계를 뚫으려고 해야 내 타켓을 위한 노력이라서,
영어를 더 잘해야 함이 나의 노력이건만,
친하다고 하는 그 친구가 날더러 스벤스카 안 쓴다고 
노여워하는 지라 내가 따져주었다.
<나는 시간 날 때 스벤스카 보다는 영어에 대한 노력이 더 필요해.
내가 스벤스카를 너보다 많이 못하는 건 당연한 이치지. 
이 간극을 이해할 수 없다면 우린 만날 필요가 없다> 
라고 얘기하였더니
이런 내 말을 나보다 더 큰, 즉 우리들 친구지간 중 가장 성공한 
한 친구에게 그대로 옮겼나 보았다.

그 성공한 친구는 일반인이엇다기 보다는 알만한 조직의 리더이기도 해서
그런 말을 전달한 내 친구 편을 들을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그 상황을 나에게 전하여 괜히 내 기분 들쑤셔 놓을 수도 없었을 터.

일전에 그 리더네 집에 우리 다함께 초대하여 가봤더니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통의 한 해법을 풀어놓앗던 그 일이
제법 훌륭하여, 여기 얘기해보고 싶다.

우릴 초대한 그 리더네 집에 가니 프랑스에서 한 친구가 와있었다.
그 리더는 나도 초대하고 내 얘기를 전달한 내 친구도 초대하고 또 
프랑스에서도 친구를 초대해 놨던 것이었다. 
어쩌다 그렇게 다국적으로 모이게 된 것이었는지 아님 일부러
그렇게 모이도록 한 것이었는지 것까진 잘 모르겟다.
암튼 프랑스인이 한 분 끼어 있었다는 것 자체로 그 자리는 전부 영어를 써야 하는
자리가 되있었다. 스웨덴에 살면서도 스벤스카를 써서는 안 되는 자리가
되버렷던 거였다. 프랑스인이 스벤스카를 모르니까 ㅋㅋ.
내 스벤스카에 대해 뒷말하고 다녔던 내 스웨덴 친구는 
우릴 초대한 우리들 친구들 중 가장 성공한 그 리더가, 프랑스인을 함께 초대해 
영어 자리가 만들어져버린 그 상황 앞에 꽤 당황해 했다.

나에 대해 뒷말하는 내 친구 얘길 듣고 그 리더는,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이라도 하였던 것일까?
그래서 또다른 친구인 프랑스 친구를 초대하여 
자연스레 영어 아니면 통하는 언어가 없게 만들어버린 것이었을까?
어쨌든 인터내쇼날한 회사를 끌고가는 자신의 입장상 자기친구 말이 한심하여
그 한심한 친구를 뭐라 탓할 순 없엇고, 
또 그렇다고 나에게 그 얘길 전할 수도 없었고 하여
자신의 생각상 중립은 지켜야겠는데 해법이 그런 방식이엇다면,
이 방식이 내게 위로가 되는 방식이어서가 아니라 꽤
훌륭한 방식이 아닌가 싶다.
일단 사람을 사랑하는 인성을 지닌 사람이라는 감이 잡혀와서다.  

평소 자신의 친한 친구인, 즉 내 흉을 보던 그 친구에게는 위력을 가하지 않고 응당 
영어를 쓸 수밖에 없는 게 객관성이라는 걸 은근히 보여준 셈이 되고,
또 나에게는 자기친구가 쓸데없이 나를 참견했다는 데에 이해를 바란다는,
즉 자기동네 그런 의리의 존재감도 알게 해주었기에 말이다.
그런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래서 그냥 함부로 자신을 대하는 판단력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나에게 컨플레인 걸며 뒷말하던 친구는 자기나름대로 나에게 
잘 대해주기 위해 종종 노력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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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 동기 : 뇌에서 자꾸 '천상효과'라고 하는 말이 떠올라서.
지금 떠오르는 단어 : 천상효과
천상효과 영문 : Heaven Ef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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