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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특집3) 탁현규의 책 <그림소담>과 한중일 풍속화와 투명인간 뭘 살까요?

오늘은 여름 특집 미술관련 책 4권 중 세번 째 책으로 이 무더위를 피해볼까 합니다. 간송미술관의 아름다운 그림이라는 부제를 달고 <그림소담>으로 제목 뽑아진 짤막짤막한 재미난 책입니다. 옛 여인네들이 치마폭을 머리에 두르고 외출하던 도판도 들여다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조선시대 풍속을 들여다 보며, 한중일 나란히 풍속화일 만한 것들 찾아보는 연결성도 꽤 더위를 식힐 만한 탐구열이 생기니, 오늘은 짧을 망정 그 탐구열을 쇼핑해볼까 합니다.
말로만 들은 바 있던 간송미술관의 소장 작품들이 궁금했더랬다.
마치 아나운서가 된 기분으로, 옛 그림 들어간 이야기책을 뒤적뒤적 넘겨보는 
이야기하기가, 왠지 또박또박 발음하고픈 준비성이 생기려 든다. 
책에 담긴 소박하지만 특별한 정서가 있다.  
거기다 한 장 한 장 넘겨보는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이 고인다. 
필시 이 힘은, 입가에 야릇하니 미소지어져 속으로 침 흘리는 듯한 
당시 조선의 남정네들 모습과 흡사하리. 


나는 투명인간이 되어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엿장수 엿가락 자르듯 딱 그런 가위가 필요해지는 "컷"소리랄까,
이 투명인간은 
달달한 엿 바꿔먹는 기분으로 신윤복의 그림 속에 숨어있다.
엿 사세요 엿! 조선시대 때 흔했던 엿! (사실인지 아닌지 모른다). 
이 투명인간은 마치 달디단 엿가락 색깔이라도 주어진 것마냥
몰래 꼭꼭 숨어, 긴 낭자머리 딴 소녀의 댕기 속으로 숨어진다.
이렇게 쓰다 보니 수줍어지네.
<신윤복, 종이에 담채, 28.2 x  35.6cm, 출처 '그림소담' 책>


탁현규의 책 <그림소담> 37페이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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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 한 올 없는 젊은 귀공자는 알상투 차림에 상체는 벗은 채로 대님을 매는데
시선은 앞에 앉은 여인에게 향해 있다. 부끄러운 듯 고개 숙인 여인은 
머리도 올리지 않은 걸로 봐서 새로 온 어린 하녀인 듯하다. 
얼굴을 그리지 않아 감상자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데, 이 점이 모든
것을 훤히 드러내는 서양 그림과 동양 그림이 나뉘는 지점이다.


노파는 한 손으로 술잔을 선비 쪽으로 받치고 다른 손으로는 입을 가린 채
하녀에게 귓속말을 하고 있다. 앞으로 도련님을 지극 정성으로 모셔야 한다는
당부일 것이다. 이렇게 신윤복 그림에 귀 기울이면 인물들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노파가 든 잔은 다름 아닌 고려청자이고 뒤에 놓인 술병 역시 마찬가지다.
당대 한양의 권세가들은 골동품 청자를 일상에서 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세 사람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긴장감은 활짝 핀 국화 밭의 화사함으로
일순간에 풀어진다. 아이 키만 한 꽃대가 늘씬하게 올라와 주먹만 한 
황국(黃菊), 자국(紫菊), 백국(白菊) 등을 마당 가득 피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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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책 속의 그림은 선명하니 담백한데, 그 책을 스캔한 이 그림은
어째 살짝 질펀한 분위기가 생성됐다. 
시대가 바뀌어도 종이책이 전자책에 밀리지 않고 확 차별화 되려면,
나는 이러한 방법을 상상해 본다. 
즉, 종이책 이 그림에 내 손을 갖다대면 
이 그림과 채도 하나 달라지지 않고 똑같이 내 파일로 옮겨질 수 있는 시대.
그런 시대가 과연 지구에 당도할 리 없겠지, 우리시대엔.


그러면 확실히 전자책 시대가 되엇다고 하여 
종이책 밀린다는 소린 쑥 들어갈 것 같다. 열심히 책 두께 꽉 누르고서 
기계 뚜껑을 닫았으나, 그 스캔은 보시는 바처럼, 
그림의 채도부터가 이렇게 다르게 나왔다. 
신윤복 그림은 설령 야한 그림들이 있더라도 담백한 짜릿함이
있는 작가인데, 스캔의 힘을 빌어 여기 싣자니 
그 쫄깃한 담백은 간데 없고 기계그림만 보는 듯하다.
물론 <그림소담>에 나온 저 그림은 그렇지 않다만,
내 스캔이 그렇다는 거다.
<신윤복 풍속화첩(風俗畵帖) 중에서 '꽃놀이', 출처 1982년 계간미술 24호>


그래서 이번에는 책 <그림소담>에 실린 작품이 아닌 
옛 미술계간지를 뒤적이며 신윤복 그림을 찾아보게 됐다.
확실히 종이책에 실린 것보다는 
좀더 선명하게 스캔된다.
아마 종이 지질의 차이 때문이리라.


손에 잡힌 이 계간미술에서는,
"18세기 영정조시대의 난숙한 문화의 멋과 풍류는 신윤복의 풍속화가 없었다면
전해질 길이 없었는 지도 모른다"고 적혀 있다.
물론 그런 이유 때문에 이 포스팅에 신윤복 작품을 골랐다기 보다는,
일전에 내가 스웨덴에서 보여주었던 
<스웨덴/한국 핸드메이드 아트 교류전>때, 당시 신윤복 작품이미지로 만들어 
보내주신 가방작가 이방실의 작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2014 유럽연합 문화수도에서 : 가죽가방 이방실작, 보자기 최은경작> 


당시 대한민국 보자기 작가 최은경 선생님이 초대작가로 오셨었고, 
이방실 작가의 이 가죽 가방이 선생님 입고 계신 한복과 잘 어울려서 찍어논
사진이 있다. 가만 보니 최은경쌤 입고 계신 이 한복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한복디자이너 이영희 선생님이 만들어주신 것이었다.
나라마다 자기네 나라의 섬세한 색감이 있는 법이라, 
함부로 우리껏만 잘났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그렇다 해도
신윤복 소재가 들어간 가죽가방과 한복과의 만남, 
거기 오랜 고목이 받쳐주는 최은경의 손바닥 보자기는 
외국인들의 눈에도 
현대적이면서도 고급스러운 한국의 미를 
해석시키는 데에 신선함을 주었었다.


그 교감이 두뇌에 저장되어 있어 
언젠간 써먹어야지 싶었었는데, 오늘 가볍게 이 포스팅에 골라보는 
사진으로나마 잡히게 되어 참 반갑다. 
이 포스팅 맨 위에 사용한, <종이에 담채, 28.2 x  35.6cm, 출처 '그림소담' 책>
이라고 출처 밝혀논 저 맨위, 도령과 소녀가 그려진 신윤복 그림에는 
'국화'라는 제목의 시가 적혀 있다. 
당나라 원진(元稹)의 시라고 한다. 


혜원 신윤복 그림에 들어간 시이니 혜원이 직접 고른 시겠지?
만일 그렇다 하더라도 
어쩜 이리 저 그림과 어울리는 시를 잡아내었을꼬.
꽃 중에 유달리 국화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나
이 꽃 지고나면 다시 꽃은 없을 것이라는 혜원의 마음이
아주 간드러진다. 
저 그림 속 소녀를 어쩌지 못해 조급해 하는 심리로 읽혀지니 말이다. 
참말 저 그림과 딱 맞는 시를 골랐수, 혜원!
자, 막걸리 한 사발~~


그러나 주모인지 기생인지 도령 옆에서 사발을 받쳐주는 그 사발이
고려청자라고 하니 설마 막걸리는 아닐 듯싶고,
저 조그마한 잔에 들어 있었다면 막걸리말고 또 뭐가 좋을꼬~~
풍속화의 쾌미가 참 맛깔스럽게 
독자인 내게 다가왔다.
<신윤복, 풍속화첩(風俗畵帖) 중에서 28 x 35cm, 출처 1982년 계간미술 24호>


풍속화를 즐겨 그렸던 작가들 중에 김득신, 김홍도도 있지만,
유독 혜원(蕙園) 신윤복의 풍속화에는 
익살스러운 장면보다는, 
엉덩이 씰룩 뒤로 빼는 여인네의 심리가 묻어 있거나,
또는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하는 속담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그 그윽한 미소짓고 있는 여인네의 얌전한 걸음걸이를
묘사하여 슬쩍, 그 걸음 방자하게 보이게끔 끼를  
심어놓는 자세 취해논 여인 그림들이 많다.
아마도 혜원이 이런 류의 여인네들에게 인기가 있어,
그 여인들에게 오더를 받아 
"저 좀 그려주셔요 저 좀 그려주셔요" 하는, 
돈 몇푼 잔돈 취미에 요즘날 마치 
어떤 자신의 광경을 사진 기능에 담아 보관하려는 것처럼, 
그러한 당시의 여인네들과 만나지기라도 하였던 것일까?


가령, "나 물놀이 가오"라고 
그 친구들끼리의 장면을 남기고 싶은데 말이지,
당시엔 사진이라는 게 없었던 시대였을 테니, 
당시의 남정네들이나 여인네들은 
그런 식의 자신들 놀이문화를 남기는 부류의 취미상, 
그러니까 좀 나간다 하는 양반님네 취미가  그러하지 않았을까. 
어이 신윤복 자네, 
우리 나들이 가니 그림으로 좀 남겨주오, 
내 닷냥 주리다.
라는 식 말이다 ㅋㅋㅋ
그렇지 않다면야 그 시절 양반 생활상 중에서도 
이런 식의 그림들을 신윤복 만큼 많이 남긴 화가가 또 있을까.
아니면 신윤복이 은근 그러한 끼있는 장면들을 
많이 겪었거나 말이다.


이 신윤복의 그림 두 점은 <그림소담> 책에 나오진 않았지만,
계간미술 24호에 의하면 이 그림 두 점도 
간송미술관 소장이라고 적혀있다. 
<중국 오대 남당, 고굉중, 한희재야연도(韓熙載夜宴圖) 일부분, 11세기 29 x 335cm, 출처 1982년 계간미술 24호>


중국 고궁박물관에 있는 풍속화. 
이 한희재야연도(韓熙載夜宴圖)는 꽤 긴 작품의 일부분 만을 여기 실었는데,
중국의 역사 속 인물 '한희재'가 주인공 되어 작품화된 것이다.
중국의 풍속화는 
"인물화의 오랜 전통속에서 확립" 되었다고 한다.
한희재는 자신의 정치적 야심이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여인들을 탐닉하는 것처럼 연출하여 
자신을 지켜내었다고 한다.


당시 남당의 후주 이욱(李煜)은 고굉중 등 신하를 보내 
한희재의 모습을 그림으로 담아오라고 시켰는데, 한희재는 그걸 눈치채고
부러 여인들과 함께 이런 모습을 연출하였다고 하네.  
이 작품을 본 후주 이욱(李煜)은 
그런 한희재를 경계하지 않았다는 뭐 
그러한 역사 속 이야기가 흥미롭다.
<중국(명), 조절(趙浙),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 일부분, 출처 1982년 계간미술 24호> 


네이버 지식백과에 의하면 : <청명상하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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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풍속화의 한 화제(). 청명절(, 춘분을 지나 
15일 후인 4월 5, 6일경 되는 날로 교외에서 노닐고 성묘를 하는 명절)에 
흥청거리는 도성의 인파를 화권형식()으로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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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나와있다. 


<청명상하도>는 몇 대에 걸쳐 달리 그렸던 작가들이 있는데, 
이 포스팅에서 보여주는 이 <청명상하도> 일부 작품은 
명나라 때 조절(趙浙)이라는 사람이 그린 것이다. 
오묘한 것은, 이 작품이 중국에 소장돼 있는 게 아닌, 
계간미술 24호에 의하면, 일본 강산미술관이라고
적혀 있다는 것이다.  


혹시 몰라, 이 <청명상하도> 관련하여 
네이버 검색되는 부분을 찾아 보았는데, 한 블로거에 의하면
이 <청명상하도>의 소장자가 
이리저리 옮겨다닌 기구한 사연이 있는 것이라는 글을 보게 되었다. 
그 <청명상하도>가 이것인지 아닌 지에 대해서는 
나로선 더 설명할 길이 없다.
<영목춘신(鈴木春信, 1725 - 1770)의 채색판화 '찻집의 여인들', 출처 1982년 계간미술 24호>


이제 일본으로 가본다.
일본은 사무라이 전통을 그려놓은 오랜 풍속화 일종들이 많은데,
이 포스팅에 나온 것은 척 보면 일본 같은 류의 판화이다.
특히 화가 고흐는 일본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은 작가로 유명한데, 일본 특유의
사물 속 점찍기, 사물 속 줄긋기 등과 같은 회화 기법이
유럽의 심플함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매우 
섬묘한 영상감을 주는 효력이라도 있는지
유럽인들이 특히 일본을 좋아한다.


잘 그려진 작품이든 못 그려진 작품이든 맵시가 느껴지는 지라, 것도
단순화된 가공맛이라 할지라도 그 가닥 속 유럽인들 눈으로는 
일본 작품들이 몹시 절제미 있는 디자인맛으로 느껴진다.
                                <에도시대 '우끼요에'의 다양한 모습들, 출처 1982년 계간미술 24호>


일본전통판화의 소재들 역시 풍속화로 묶어질 만한 것들이 많다.
중국에도 일본 기모노류의 기모노가 있고
일본에도 기모노가 있는데, 특히 오래되 보일수록 원색에 가까운 
적나라한 상상도들이 펼쳐지는 풍경화도 많다.
이 여름, 야한 걸로 치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법한 기모노를 보니,
바다와 기모노가 썩 잘 어울릴 법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옛 풍속화가 있는 해변가에서, 
알고 보니 그건 풍경이 아니었고 그림이었더라, 라고 얘기하는, 
사실화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한 화가의 사실화 그림에 속아넘어가,
그걸 풍경이라고 바라보아도 좋을 물놀이들 잘 다녀오시길.
그 그림은 바로 여러분 자신들 마음 속에 각자 그리는 
'풍경화 납시오', 
라고 해도 더위는 쉬 물러가지 않을 듯 싶다.
휴 더워라.
뭔 소린지, 지금 이 투명인간은 
바닷물에 퐁당 빠지고 싶다. 
이 에도시대 판화들 같은 이미지 말고.
<일본에서 한 풍속일 만한 모델들과 나>


몇년 전에 이곳 이글루스 다른 포스팅때 사용했던 사진을 여기
그대로 가져와 본다. 한 미술관을 거쳐 도쿄대 근처.
당시 어떤 행사가 있었는데 그들과 함께 찍은 모습이다.
거리엔 먹자 분위기 조성되었고, 
이런 옛 전통 의복을 입은 관 모델들이 내게 친절했다.
일본에 대한 내 작은 기억은 
내게 정말정말 그들이 친절했다는 기억 밖에 안나는데, 
요즘 같으면 
내 얼굴 모자이크처리 안 할 터인데, 
당시로선 아직, 내가 성장하려면 까마득했던 시절이라 모자이크를 했어야
마음만족 되었었나 보다.
당시의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 이 마음 심(心)이 
지금 나의 유럽생활 속 심리풍속화되어 사진으로 남았다.


<그림소담> 읽으며 
지은이 탁현규님의 간송미술관의 소장 그림들 잘 읽었다.
도대체 신윤복은.... 
글쎄, 탁현규 선생은 신윤복의 한 그림에다 또
이런 제목을 붙여놓았네.
<소년이 꽃을 꺾다>.


탁현규의 책 <그림소담> 37페이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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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전신첩>의 화폭은 어떤 드라마의 명장면보다도 박진감 넘친다.
이는 동서양 전체를 통틀어서 그러하니 이 그림은 
모차르트 오페라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맨 윗그림 아님).
<돈 조반니>에서 시골 처녀 체를리나를 유혹하는 난봉꾼 귀족 돈조반니, 
혹은 <피가로의 결혼>에서 하녀 수잔나를 유혹하는 백작 알마비바가
딱 이런 모습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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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 동기 : 재밌게 술술 넘겨지는 <그림소담>에 빠져. 
왜 하필 신윤복만? : 이름에 복, 자가 들어가서.
신윤복 정확한 영어이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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